로고


전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전시상세정보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The Garden of Forking Paths

  • 상세정보
  • 전시평론
  • 평점·리뷰
  • 관련행사
  • 전시뷰어




2025년 7월 31일부터 가나아트 한남에서 개최되는 《The Garden of Forking Paths》는 서로 다른 영역이 교차하는 경계 지점을 조명하는 네 명의 작가를 소개한다. 본 전시의 제목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의 동명 소설에서 차용한 것으로, 이 소설은 한 첩자에 대한 이야기와 그 주인공이 읽는 또 다른 소설이 내화로 삽입된 액자식 구조를 지닌다. 내화에서는 하나의 선택이 새로운 갈래를 만들어내며, 모든 가능한 선택과 결과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이 전개된다. 이처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The Garden of Forking Paths)’이라는 은유는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으며, 세상은 수많은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들이 중첩된 복합적 구조임을 시사한다. 구기정, 서동욱, 송수민, 정소영 작가는 현실의 층위를 단일한 시각으로 환원할 수 없는 다층적 구조로 이해하며, 서로 다른 시간과 현실이 공존할 수 있는 세계를 제안하는 점에서 상응한다. 그들은 각자의 고유한 조형 언어를 통해 자연과 기술, 고립과 관계, 일상과 재난, 과거와 현재의 접점을 탐색한다. 


구기정(b. 1990)은 실재와 가상의 이미지가 혼재하는 작업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인식하고 재현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 깊은 곳〉(2023)은 보존을 위해 건조된 식물과 디지털 이미지로 구성된 일종의 디지털 테라리움을 바탕으로, 자연이 인간 중심적인 시선 아래 어떻게 선별되고 가공되는지를 드러낸다. 이어지는 〈The Transparent Visual Apparatus〉(2025) 연작은 LED 기판, 3D 렌더링 이미지, 모니터 등 이미지가 형성되고 보여지는 물리적 조건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시각 경험의 구조를 환기한다. 구기정의 작업은 보는 것이 중립적 지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규정한 구조와 기술적 장치 안에서 형성된 결과임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시각 시스템의 이면을 드러내고 실제와 가상 사이의 경계를 교란하는 전략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에 균열을 내고 다른 방식으로 ‘보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현실을 단일한 시각으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송수민(b. 1993)의 회화에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재난과 일상 같은 이질적인 장면들을 병치하여, 개인의 삶과 전 지구적 위기가 맞물리는 지점을 탐색한다. 팬데믹 시기에 임신과 육아를 경험한 이후, 작가의 작업은 ‘타자의 시선으로 본 재난’에서 개인의 서사로 옮겨갔다. 신작 〈Explosion and Doodles〉(2025)에서는 아이의 낙서, 미사일 궤적, 화산재 등이 형태적으로 중첩되며, 일상에 스며든 재난에 대한 인식을 환기한다. 특히 캔버스나 물감 표면을 긁거나 사포질을 반복하는 제작 방식은 단순한 기법을 넘어, 삶에 내재된 불안을 화면에 물리적으로 새기는 행위로 작용한다. 이처럼 상반된 요소들이 병치된 화면 구성은 단선적인 내러티브를 벗어나, 감정과 경험이 교차하는 다면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송수민이 일상의 균열을 병치와 흔적을 통해 시각화한다면, 서동욱(b. 1974)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미묘한 흐름에 집중한다. 그는 오랫동안 ‘멜랑콜리’라는 주제에 천착해왔으며, 최근 작업에서도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의 회화 속 인물들은 고립된 상태에 놓여 있지만, TV 시청이나 악기 연주 같은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소외의 시간을 견뎌낸다. 때때로 두 인물이 함께 등장하지만, 이들은 소외보다는 고독을 선택한 듯 침묵을 공유한다. 서동욱의 멜랑콜리는 단순한 우울이 아닌, 무표정과 내면의 진동, 침묵과 발화되지 못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입체적인 정서다. “예쁘고 매끈하기만 한 것은 장식일 뿐이다. 예술에는 늘 상처난 곳이 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회화는 감정의 복합성과 인간 존재의 내면에 숨겨진 틈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정소영 (b. 1979-)은 장소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을 통해 서사가 형성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전시작 〈이미륵의 거울〉(2024)은 독립운동가 이미륵의 망명 경로를 따라 압록강을 바라보며, 그곳에 축적된 이주의 흔적과 경계의 의미를 탐구한다. 강의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은거울 표면은 20세기의 이미륵과 거울에 흐릿하게 비치는 현재 사이에 흐르는 시간을 연결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응결〉(2023) 연작에서는 컵 아래 맺혔다가 사라지는 물 자국을 알루미늄으로 주조해, 소멸과 잔류 사이의 긴장을 응고된 형태로 제시한다. 정소영의 두 연작 속 '물'은 증발이라는 자연 현상을 통해 시간을 가시화하고, 흐름, 범람, 침전의 과정을 반복하며 역사의 층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물이 표상하는 다양한 의미의 전이를 통해 발생하는 새로운 서사를 조각의 언어로 형상화한다.


전시는 이러한 작가들의 사유가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관람자는 엘리베이터와 이어진 ‘정문’과 정원으로 이어지는 ‘후문’, 두 개의 입구 중 하나를 선택해 전시장에 진입하게 된다. 후문을 통해 들어올 경우, 송수민과 서동욱의 회화가 양옆으로 펼쳐지며, 일상과 재난, 무기력과 저항이 병치되는 장면을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다. 반대로 정문 앞에는 실재와 가상, 자연과 인공이 혼재된 구기정의 작품이 자리하며, 인간의 지각과 경험이 어떻게 매개되고 구성되는지를 질문하며 전시의 서두를 연다. 정소영의 작업은 전시장의 중심부에 배치되어, 두 방향에서 유입되는 동선을 가로지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지리적 경계에 대한 사유를 제안한다. 각 작업은 현실의 서로 다른 단면을 비추며, 전시장 안의 모든 장면은 하나의 이야기이자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점이 된다. 두 개의 입구 사이에서 관람자는 직접 경로를 선택하고, 작품들을 통과하며 중첩된 시간과 현실을 따라 걷는다. 이로써 전시는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의 갈래가 공존하는 보르헤스의 소설 속 정원으로서 작동한다. 현실은 언제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 위에 있으며, 이 전시는 그 다층적 경로를 따라가는 하나의 시도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