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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인문극장 기획전: Ringing S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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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인문극장 기획전 《Ringing Saga》는 두산아트센터가 위치한 종로에서 출발한다. 서울 중북부에 위치한 종로는 서울에서 열 번째로 큰 자치구로, 도심 한복판인 종로 일대는 시끄럽고 진진한 삶의 풍경으로 가득하다.

전시장에 도착하기까지 마주하게 될 몇 가지 풍경을 묘사해 본다. 지하철역 바로 앞에는 밤낮없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손님을 맞이하는 약국들이 줄지어 있다. 그 맞은편에는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광장시장이, 그 너머로는 방산시장이 보인다. 광장시장을 찾은 관광객의 들뜬 얼굴 뒤편, 다리 하나만 건너면 외부인은 쉽게 스며들 수 없는 일상의 현장이 펼쳐진다. 뜨내기의 발길과 녹진한 삶의 무게가 교차하는 흥미로운 풍경이다. 이렇게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대학로, 청계천, 광화문, 인사동까지 금세 종로의 구석구석에 닿게 된다. 무심코 스치는 길목마다 시대를 달리하는 기억과 흔적이 층층이 새겨져 있다. 서울의 가장 오래된 구도심이자 도시의 흥망성쇠를 오롯이 품고 있는 지역인 종로를 들여다보는 일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탐구하는 과정인 동시에 도시라는 거대한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편, 종로는 서울을 맴도는 수많은 사람들과 일대일의 특수한 관계를 맺는 장소이기도 하다. 특별한 연고가 없을지라도 온갖 산업과 활동이 교차하는 공간적 특성 덕분에 누구에게든 일터이자 여가 공간, 혹은 거처가 된다. 또한, 중심부라는 지리적 특성상 누구든 한 번쯤은 거쳐가는 이동의 통로이자 머무름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한 장소를 둘러싼 경험과 정체성이 무수히 중첩되거나 분화된다는 점에서 종로는 보편성과 특수성이 생생하게 교차하는 매개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종로라는 이 길 위에, 과연 완전히 낯선 것이 있을까?

《Ringing Saga》는 이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제목의 ‘링잉(Ringing)’은 무언가 울려 퍼지고 있는 생동의 상태를, ‘사가(Saga)’는 장대한 서사 혹은 모험담을 의미한다. 전시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출발해 종로에 관한 새로운 모험담을 써 내리는 것을 시도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명의 작가, 구동희, 김보경, 안진선, 이유성, 홍이현숙은 도시의 은밀한 관찰자이자 탐험가로서, 종로에 쌓인 공적 시간과 사적 기억들을 연결하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신묘한 기운이 감도는 골목, 양기로 눌러낸 질곡의 역사, 귀신도 울고 갈 도시 재개발의 속도까지. 매 걸음마다 기이한 모험이 펼쳐진다.

안진선은 종로 일대를 천천히 걸으며 불안의 감각을 추동하는 장면들을 관찰했다. 작가는 노쇠한 도시의 생애주기에 따라 부서지고 지어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건축의 풍경에 주목한다. 미처 흔적을 감추지 못한 채 그대로 남겨진 건축 자재, 쓸모를 다한 것으로 판명되어 내쫓긴 가구들, 새로운 것을 기다리는 대기의 장막은 그의 시선을 거쳐 전시장 안으로 옮겨진다. 〈책장〉(2025), 〈서랍장〉(2025), 〈매트리스〉(2025) 등 거리 위 사물의 이름을 전유한 이번 신작들은 그 이름이 함축한 본래의 용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전시장이라는 임시적 거처 안에서 도시 재건축의 풍경을 직조한다. 관객은 그 안에서 익숙함과 낯섦, 기시감과 미시감 사이를 진동하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유성은 이번 신작에서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오래전의 기억들을 끄집어내 종로라는 장소성과 이종 교합시킨다. 영화관, 밤 골목 등 자신의 특정 시기를 형성했던 과거의 장소들을 회상하며, 그 기억을 경유해 발견한 허구적 공간들을 현실 안에 시뮬레이션 한다. 이 시각적 알레고리의 중심에는 ‘장미’가 있다. 장미는 인류사 전반에 걸쳐 복합적인 문화적 기호로 작동해온 식물로, 종로가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이 교차하는 지점과도 맞닿는다. 그간 작가는 이질적 기호와 대상, 물성을 접합해 그로부터 발생하는 뜻밖의 에너지와 존재 방식을 탐색해왔다. 신작 〈바그다드〉(2025), 〈취한 두더지의 밤〉(2025), 〈존재 교환소〉(2025)에서는 브론즈와 비닐봉지, 황동판과 변색된 우레탄폼, 천조각 등 각기 다른 질감과 무늬, 무게를 가진 재료가 사용되어 장미와 공간 모형이 기이한 방식으로 결합된다. 이 조각들은 종로의 골목을 헤매며 느낀 막막함, 둔탁한 시간의 흐름, 어딘가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에너지를 응축한 형상처럼 다가온다.

김보경은 ‘풀기’와 ‘엮기’의 방법론을 통해 거시사와 미시사, 과거와 현재, 전체와 파편을 다공적으로 이어낸다. 벽면을 가득 메운 작품 〈당초문 군락—땅 밑에서부터 사방으로 휘휘〉(2025)는 2000년대 초 종로1가 옛 피맛길 터에서 발굴된 분청사기편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조선 초기의 청화백자를 중심으로, 재료와 문양, 교역의 행로 등에 얽힌 방대한 물질문명의 역사를 이어 붙인다. 청화백자의 안료였던 광물 ‘코발트’에 얽힌 채굴의 역사, 장수를 기원하는 당초무늬의 확산, 상권의 중심이었던 옛날 종로의 풍경 등은 디지털 콜라주로 재해석되어 비선형적인 연대기를 그리며 그 안에 내재된 전방위적 이동의 경로를 추적하게 만든다. 또한, 윈도우 갤러리에 설치된 신작 〈무늬 궤적〉 시리즈(2025)는 모빌의 형태를 빌려, 한 눈에 교집합을 찾기 어려운 이질적 요소들이 어떻게 덩굴처럼 얽혀 서로 간의 연결 고리를 형성하는지 시각화한다.

홍이현숙은 〈광화문 정물〉(2011)과 〈손 팻말 시위(피케팅)〉(2016)을 통해 장소를 둘러싼 신체와 사회, 정치의 관계를 재편한다. 광화문 광장과 효자동 사거리라는 일상적인, 그러나 지극히 정치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두 영상에는 파란 꽃무늬 원피스 차림의 낯익은 인물인 작가가 등장한다. 광장 위에 선 그는 살아 있는 정물이 되거나 누군가의 통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어 익숙한 장소에 비일상적 균열을 일으킨다. 이러한 몸짓을 통해 그가 대변하는 존재는 국가 재난의 피해자, 발언권이 희미한 소시민, 여성과 소수자 등 특정하기 어려운 ‘나와 내 주변 모두’다. 해마다 의미를 새롭게 갱신하는 두 광장을 시차를 두고 바라보며, 우리는 지나간 사건과 기억, 같았던 것과 달라진 것을 다시금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구동희는 평범한 일상에 움튼 모순을 포착하고, 이를 확대하거나 전환함으로써 세계가 가진 낯선 이면을 드러내 왔다. 〈타불라 라사〉(2023-2025)에서 그는 도시를 배회하는 유령 같은 인물들을 통해 도시의 기록 관리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한다. 2023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서울 곳곳에서 기척없이 날아드는 실종자 알림 메시지를 수집하고, 그 패턴을 분석한다. 알림은 성별, 연령, 인상착의, 실종 지역 등 구체적인 정보를 포함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실재하는 존재를 정확히 상상하기 어렵다. 작가는 이러한 정보들을 AI 이미지 생성기에 입력해 실종자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생성된 이미지는 빅데이터에 축적된 표준화된 외형을 반영하며, 특정 시기 유행하는 복장이나 스타일, 생김새를 가진 한국인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이처럼 패턴화된 정보 값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의 도식은 특정인을 지시하는 듯하지만, 결국 누구도 정확히 지칭하지 못하는 도시 정보 시스템의 익명성과 공백을 가시화한다.

《Ringing Saga》는 현실의 구체적인 장면에서 출발하지만, 그 시간성을 계속해서 탈주하며 특수한 시공간을 생성한다. 이제, 여기서 마주한 이상한 장면들을 어딘가에 담아두고 전시장 밖을 나설 시간이다.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까. 다시 시끌벅적한 종로의 거리로 돌아가 차를 한 잔 마실 수도 있고,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오는 길에 보았던 눈에 익은 대상을 다시 돌아보거나 새로운 것을 찾아 긴 산책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다. 이 모든 선택들이 종로, 그리고 도시에서 발생하는 작고 큰 모험들이다. 매일의 일상으로 일궈낸 이 모험담의 주인공은 아침마다 종로로 부지런히 출근하는 ‘A’일 수도, 전시를 보고 재료를 사러 이 일대에 잠시 들른 ‘B’, 낯선 경험을 위해 골목을 헤매는 여행자 ‘C’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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