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오마주 박수근 〈멍멍야옹야옹짹짹짹-봄〉
이번 전시를 앞두고, 나는 박수근 선생 오마주 작품을 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화가이자, 전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국민화가인 박수근 선생에 대해선 익히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이번 기회에 좀 더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박완서 선생의 소설 <나목>을 읽다가 한동안 마음이 가는 문장을 발견하였다. 소설 속 화자 ‘이경’이 ‘옥희도’가 그려놓은 그림 속의 ‘나무’를 설명하는 대목이었는데, 이번 오마주 작업의 소재를 ‘고목’으로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꽂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이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박완서, < 나목 >, 작가정신, 1991, p.195
꽂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 (인쇄된 글자를 자세히 보니, 꽃이 아니라 꽂'이다. '꽂'은 '꽃'의 경북, 함경 방언) 나무를 그리면 늘 상 꽃이나 잎을 같이 그렸는데, 꽃도 잎도 열매도 없다니... 몇 문장 아래에는 ‘한발에 고사한 나무’라 쓰여 있다. ‘심한 가뭄에 말라죽은 나무’를 말하는 것이다. 박수근 선생을 모델로 삼았다는 소설 속의 화가 옥희도가 그린 '고목'은 '오래된 나무'가 아니라 아예 '죽은 나무'를 말하는가 보다.
박수근 〈고목과 여인〉, 1960년대 전반, 캔버스에 유채, 45×38cm, 리움미술관 소장
'고목'을 내 그림으로 가져와 살려봐야겠다. 강아지, 고양이, 새들, 아이와 함께!
박수근 선생이 자주 그렸던 나무들은 대부분 잎이 지고 가지만 남은 채 추운 겨울을 버티고 있는 ‘나목 裸木‘이거나 키가 크고 더 자라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古木 고목) 혹은 말라서 죽은 나무(枯木 고목, 고사목) 를 뜻하는 ‘고목’이다. 그 중 1960년대 전반에 제작된 <고목과 여인>의 나무는 상부가 과하게 잘려나가 밑둥의 일부만 남겨진 모습이다. 내가 살고 있는 전원에서는 이런 형태의 나무를 종종 보게 된다. 보통은 커다랗게 자란 나무를 통째로 캐버릴 수 없을 때, 나무를 고사시키려는 의도로 나무의 상부를 싹둑 잘라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 속의 나무는 어떤 연유로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가지의 상당 부분이 잘려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박수근 선생 그림 속의 나무는 죽지 않았다. 곁가지가 힘겹게 자라나 있다. 잎은 하나도 없지만, 몇 가닥의 어린 가지에서 희망이 느껴진다. 이 나무는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고사 직전의 나무이거나 밑둥만 남은 채로 혹독한 한겨울을 버티고 있는 ‘나목’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잎도 열매도 없는 한없이 쓸쓸한 느낌의 ‘고목’에 ‘새싹’을 그려주고, 지저귀는 ‘새’들이 놀다 가게 해주고 싶었다.
1960년대 전반, 중견작가로써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박수근 선생은 신장과 간 이상으로 투병중이셨고 시기를 놓쳐버린 백내장 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눈은 실명에 이른다. <고목과 여인>은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그려진 걸로 추측된다. 광주리를 이고 담소를 나누는 소박한 여인들이 지나다니는 한적한 시골마을 길목에 우뚝 서 있는 고목. 우직하고 쓸쓸한 모습의 ‘고목’은 힘겨운 화가의 삶을 꿋꿋이 이어가던 박수근 선생 당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박수근 선생께서는 안타깝게도 1965년 5월 6일,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51세에 작고하셨다. 금년은 박수근 선생의 60주기가 되는 해다.
나는 오랜 세월을 여전히 꿋꿋이 버티고 있는 박수근 선생의 ‘고목’에 ‘새순’을 그려 넣었다. 고목 주변에는 작은 새들과 동물 친구들이 ‘멍멍’ ‘야옹야옹’ ‘짹짹짹’ 봄맞이 인사를 나눈다. 박수근 선생이 계시는 ‘천당’에도 따스한 봄이 왔을 것이다.
박수근 선생님, 그 곳에선 아픔 없이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박형진 <멍멍야옹야옹짹짹짹-봄>,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60.7×91cm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어린이미술관 특별展
‘멍멍야옹야옹짹짹짹-박형진展‘
2025.4.22 - 2026.4.12.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어린이미술관